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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카와 다쿠미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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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아사카와 다쿠미 평전
출판사 효형출판
저자 다카사키 소지 지음 김순희 옮김
출간일 200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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浅川 巧 Asakawa Takumi     
아사카와 다쿠미 평전 - 조선의 흙이 되다 
    다카사키 소지 저, 김순희 역
효형출판 (2005)
    양장본   /   286쪽 /  162*232mm 
    ISBN 13 : 9788958720225

책소개

1914년 조선으로 건너와 18년간 임업시험장에서 일했던 산림 기수이자, 야나기 무네요시와 함께 조선민족미술관을 세워 조선의 민예를 연구한 아사카와 다쿠미의 평전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회상을 바탕으로 그의 생애와 조선 공예 연구가로서의 활동을 되짚어 보았다.


바람서적 서평

한일관계사 공부하시는 분, 산림청 역사 관련 연구하시는 분, 한국의 박물관사나 도자기나 공예 등을 연구하시는 분, 민예를 연구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

아사카와 다쿠미의 일기를 비롯 그의 각종 책과 글들이 한국에 더욱 많이 번역되어 나오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소개함.

아사카와 다쿠미(浅川巧,1891년 1월 15일 ~ 1931년 4월 2일)는 일제 시대 한국 총독부 산림과에서 근무했던 일본인.

다쿠미는 성실한 인간. 마치 백자처럼 실용적인 인간이다. 세상과 싸우기 보다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인간. 일종의 한량. 투쟁하기 보다는 삶을 즐겼던 사람.

자신이 존재하는 바로 그 장소를 사랑했던 인간. 거기가 어디이든. 만약 다쿠미가 커피에 경도되어서 이디오피아에 갔더라면 이디오피아를 사랑했을 것이다. 현재 다쿠미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혀있음. 소명처럼 자기 앞에 존재들을 사랑했던 인물.

예술을 알았고 예술을 사랑했음. 야나기 무네요시가 작게 느껴짐.

영화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道-白磁の人)’ - 2009년 자민당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55만에 등장한 일본 민주당 정권이 지지율 폭망할 무렵 다쿠미 관련 영화가 만들어짐. 일본의 민주당 집권은 2009년 오바마 정권의 등장으로 가능했음. 민주당 정권 마지막에 영화가 만들어졌으나 당연히 흥행에는 실패. 일본에서는 좌파가 밀어 주지만 반일을 모토로 하는 한국 좌파에게는 지금까지 그다지 인기 없었던 인물이다. 기독교 내부의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는 무교회주의나, 함석헌 등 기독교 내부 뿌리깊은 사회주의(글로벌리즘)를 띄우기 위해 향후 인기몰이 진행할 가능성 다소 있음.  

책에서는 다쿠미가 감리교인이라는 사실이 다소 간과되어 있음. 일본에 기독교인이 1%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다쿠미는 보통의 일본인이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음. 성공회에 분리된 감리교의 종교적 특성. 기타 종교적 성향은 서간문과 일기를 아직 읽지 않아서 정확히 잘 모르겠음.  
교회 시스템 자체를 거부. 무교회주의는 어설픈 비폭력주의자 톨스토이의 영향 가능성. 성공회에서 분리된 감리교. 리버럴. 흰색 가운, 우치무라 간조 영향 가능성.  
다쿠미가 한국어를 배우고 한복을 입고 다닌 이유는 도자기를 구입했던 고물상에서 바가지를 쓰지 않기 위해서 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바라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고물상에서 옷을 허름하게 입어야 하는 이유. 
조선의 민둥산을 푸르게 하는 것이 소명이었던 다쿠미가 막대한 나무를 연소하여 만들어지는 도자기에 열광해서 전국에 산재한 가마터를 찾아다녔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나무 종자를 수집하러 다니면서 동시에 전국 가마터에서 도자기 조각을 수집하고 다녔음. 나무는 불을 만들고 그 불은 도자기를 만든다. 나무와 도자기는 사실상 다르게 보이지만 매우 가깝다. 
자연 상태 흙의 힘을 이용하는 '노천매장법' 방식. 다쿠미 자신이 일종에 한국 노천에 묻힌 씨앗. 
야나기 무네요시를 도와 만들었던 조선민족미술관은 일종의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음. 
한국의 감리교회는 미국 북감리회의 스크랜턴 선교사가 세운 애오개 시약소를 모체로 하여 발전했음. 정동을 중심으로 의료활동을 벌이던 스크랜턴은 가난하고 소외된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정동 밖으로 나가 전염병 환자 진료소 활인서(活人署)가 있던 애오개(아현동) 시약소를 세웠고 이는 오늘날 아현교회로 발전. 다쿠미의 형이 처음 한국에 와 살았던 곳이 정동이고 다쿠미는 북아현동에서 생활을 시작함. 북아현동 중앙여고 추계예술대 자리(서대문구 북아현동 190-1)에 조선총독부 농상공부 임업시험소가 있었음. 애기능. 실제 19세기 지도를 보면 활인서는 개천 왼쪽에 위치하는데 실제 아현감리교회는 우측에 위치하고 있음. 
한국에는 능주변에 공동묘지가 많다. 공동묘지 때문에 산림이 보호된다. 북아현동 애기능 - 아현동에 어린아이 무연고자 무덤이 많았음. 活人署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리가는 빈민구제 제도. 관리와 함께 승려와 무녀 등이 환자를 관리하고 사망자 매장을 했다고 함. 이를 근대에 들어 기독교와 기독교계 병원 및 애오개 시약소로 이어짐. 
감리교는 '연대주의(Connexionism),' '선행 은총(The Prevenient Grace)에 의한 선택권의 회복' 등이 특징. 
  마치 성공회의 경우처럼 에큐메니칼 운동과 연관되어 글로벌리스트화 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함. 에큐메니컬 운동의 주체는 기독교 내부의 글로벌 리스트들임. 이러한 움직임은 기독교의 붕괴 및 해체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음. 오늘날 철저히 좌파화된 성공회의 경우을 보면 됨. 한국의 에큐메니컬 운동을 떠드는 자들은 현재 북한 주체사상 설파하고 다님. 글로벌리스트=북한. 80년대 해방신학하던 인간 쓰레기들이 2020년대에 에큐메니안, 무교회주의 등으로 다시 등장. 한국에서 북한 선교 떠드는 목사는 간첩일 가능성이 농후함. 
 무주공산. 국립공원 무료화, 지속적으로 그린벨트를 없애는 좌파 정부. 
  
북아현동 주민센터 남쪽 3블럭 정도만이 당시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고 북아현동이었음. 1914년 조선으로 오고 1922년 이전에 청량리로 이사. 약 7년 미만을 북아현동에 살았을 것으로 추측. 1914년 5월 2일 조선에 와서 ‘독립문통 3-6’에 살기 시작했다고 함(p77) 1916년 2월 7일 임업시험소가 있는 아현북리의 일본식 집으로 이사(p80). 1914년 말이 조선거주 일본인 29만명(p77). 2015년 통계 남한만 5천만 인구에 38만명이 한국 거주 중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임. 1914년 당시 한반도 전체 추정인구 천7백만. 1921년 농상공부 삼림과가 식산국 산림과로 변경 임업 시험소가 북아현리에서 청량리로 옮겨감. 1921년 북아현리에 있었을 때는 총 6명이 근무했음. 1922년 청량리로 옮겨가면서 이름을 조선임업시험장 으로 바꾸고 총 17명이 됨(p87) 1920년 조선민족미술관 기부금 보낼 주소 중 일부 – 경성부 서대문국 아현(p103). 다쿠미가 살았던 북아현동은 지금의 냉천동과 가까운 철길 윗쪽의 북아현동.   
다쿠미의 매우 우익적인 노동관 - ‘자본과 맞서는 노동이 아니라, 자본에 좌우되지 않는 노동, 또 자본이 없더라도 제 맘대로 해낼 수 있는 노동이야말로 사람에게 평안을 가져다줄 수 있다 (p127) 
도공부활을 기대함(p142)
  1923 간토 대지진 관련 정확한 지적 - ‘오히려 일본인 사회주의자 패거리가 주모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막벌이 일꾼들을 앞잡이로 이용해서 저지른 일이 아닐까(p166)’ 2020년 지금도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의 이러한 방식의 반일공작이 계속되고 있음. 
  1930년대 신사참배 문제가 불거지기 이전에 이미 신사참배 문제에 대한 기독교 내의 거부감을 보여줌. 
‘평생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무교회주의’에 가까웠다(p71) - 성공회에서 분리된 감리교의 특성. 
‘다쿠미가 일하는 것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이다’ - 우파적 노동관(p29) 
경성감리 교회에서 장례식(1931년 4월 2일 오후 5시) - 신세계 백화점 건너편 스테이트타워 남산 자리(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2가 1-32) 
1934년에서 1947년 사이 교과서에 실렸다는 아베 요시시게의 수필은 종이 색 자체가 다르게 되어 있음(p277-p232).


00:00 아사카와 다쿠미(浅川巧)에 대한 간단한 설명
00:52 한국의 도공을 공예가의 모범으로 삼고 그 흔적을 추적함
02:03 절판된 다쿠미의 한국어 번역서 ‘조선의 소반(朝鮮の膳)’과 ‘조선도자명고(朝鮮陶磁名考)’에 관하여
03:03 한국 공예문화에 있어서 소반의 중요성
03:56 아사카와 다쿠미의 서간과 일기(浅川巧 日記と書簡)
04:08 아사카와 다쿠미의 정체성
05:16 아사카와 형제의 조선 입국 과정
06:13 일본과 기독교의 문제
06:55 기독교 내의 좌파 세력에 대하여
07:39 해방신학의 허구성과 최근의 움직임
08:31 아사카 다쿠미에 대한 좌파적 해석들
09:24 글로벌리스트가 지배하는 2차대전 이후의 세계
10:28 아사카와 다쿠미(淺川 巧)는 우익(右翼)이다
11:22 자기 세계를 중시했던 다쿠미의 라이프 스타일
12:52 다쿠미가 한복을 입었던 이유
15:40 현장중심의 공예연구가
20:43 다쿠미는 우익이 기억해야만 하는 인간이다
21:20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최근의 한일관계
21:49 독립서점으로서 바람서적의 정체성 



목차

- 3판을 내면서
-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 시작하며 : 조선인을 사랑하고, 조선인에게 사랑받은 사람

1장 다쿠미를 낳은 땅
시인의 자손
좋은 할아버지
어머니 치노 게이

2장 조선 도자기의 달인, 형 노리타카
조선에 간 아사카와 노리타카
조선 도자기를 연구하다
도예가, 조각가 그리고 시인
조선으로, 조선의 민중 속으로

3장 조선의 산을 푸르게
자연과 함께 자란 어린 시절
숲을 빼앗긴 조선에 가다
산과 숲은 자연에 맡겨야 한다

4장 민예에 심취하다
야나기 무네요시와의 인연
조선에 조선의 미술관을 세우다
새로운 발판

5장 조선 미(美)의 발견
조선 밥상에 빠지다 - '조선의 소반'
제 이름을 부르다 - '조선도자명고'
조선의 아름다움을 담아 - '소품집'
피우지 못한 꽃

6장 다쿠미의 일기
일기, 발견되다
산의 생명력만이 숲을 키운다
나눌수록 커지는 조선 도자기 사랑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따뜻한 눈길

7장 다쿠미와 친구들
낮은 데로 임하는 우정
지음지기
조선공예화를 만들다

8장 조선의 흙이 되다
갑작스런 죽음
조선 땅에 묻히다
그리움 - '고게이' 아사카와 다쿠미 추도호
아사카와 다쿠미를 애도한다

9장 기억 속에 영원히
그리울수록 더욱 커지는 사랑
영혼의 울림
되살아나는 그의 자취
가깝고도 먼 이웃의 다리가 되어
제2의 아사카와 다쿠미를 꿈꾸다
한일 교류의 공간, 아사카와 형제 자료관

- 마치며 : 식민의 그늘, 인간의 빛
- 감사의 말

- 옮긴이의 말 : 인생의 반환점에서 느낀 진실한 사랑

- 아사카와 다쿠미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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