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서적 서평/ 책소개
이 책은 엄마가 외할머니 병간호로 집을 비우게 되면서 생기는 ‘집안일’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아빠와 자식들이, 또 병석에 누운 외할머니를 대신해 한동안 혼자 생활을 해야 하는 외할아버지가 집안일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에 대해 알려주는 책을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어린이든, 아빠든, 독신이든, 누구든 집안일하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썼다는 마음이 잘 전달되는 인트로이다. 물론 "생활도감"은 오랜 세월 살아남은 책답게 삽화, 내용 등 전체 구성이 레트로하면서도 탄탄하다. 그리고 가격 또한 전혀 부담이 없다.
이 책이 기획된 일본은 한국에 비하면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독립적으로 키우는 나라이다. 일본 부모는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시키면서 세상에 적응을 하도록 한다. 주변에 민폐 끼치지 말고 자기 몫은 해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도 급식 배식이나 교실 청소 등을 통해 자신의 몫의 일을 하도록 가르친다. 서양인(앵글로색슨)의 눈에 비친 특이한 일본인들의 육아관을 다룬 유튜브 영상도 있다(호주방송 The Feed SBS 채널의 "Japan's independent kids").
한국은 아이가 성인이 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지 자문해야 할 때이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일상의 집안일로부터 점점 유리되고 있다. 아주 어려서부터 학업이 모든 것에 우선하여 다른 모든 것은 무시된다. 학교에서도 준비물 챙겨오기나 주번과 같은 아이가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을 점점 줄이는 것 같다. 잡다한 일은 부모가 도맡아 해주거나 타인에게 맡긴다. 한국 아이들은 ‘내가 학업/취업/직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모두가 나를 도와줘야 한다’는 세상 속에 사는 것 같다. 결국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서도 비슷하게 대접받으려 하고 행동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사회인이 되면 최근 있었던 ‘인천 칼부림 사건’에서 자신이 도와주어야 할 범죄피해자를 내버려두고 자기를 도와줄 누군가를 부르러 간 여경처럼 자신의 임무조차 누가 대신 해주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기에 경찰이 된 것이고 자신에게 버겁거나 무서운 임무는 당연히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줘야 한다는 발상의 소치로 느껴졌다.
물론 세상에 나쁜 개는 없고 나쁜 개주인만 있듯이 세상에 나쁜 아이보다도 잘못 가르치는 어른들이 있기에 이런 현상이 만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내가 관찰한 한국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나라가 아니고 성인이 되지 못하도록 막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앞서서 자기 앞가림해야 되는 나이대의 아이들한테도 아무것도 안 시킨다, 되려 아무것도 못 하게 한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마녀(유바바)’가 장난감과 쿠션으로 채운 방에 가둬 두고 과보호로 키우던 ‘아들(보우)’처럼 덩치만 큰 아기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어엿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괴롭고 귀찮고 더럽고 하기 싫거나 하기 겁나는 일들을 도맡아야 하는 연속이다. 돈을 벌어 생계를 꾸려 나가는 것은 물론 집안 살림도, 생활을 꾸려 나가는 것도 그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나서 얼굴 닦을 수건이 있으려면, 입고 나갈 다림질된 깨끗한 셔츠가 있으려면, 나갔다 와서 먹을 밥이 있으려면, 물 따라 마실 깨끗한 컵이 있으려면, 불결하지 않은 화장실을 쓰려면 해야 하는 일.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해서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다. 주부라 해야 되는 게 아니고 사람이라면 해야 하는 일이다.
이 책은 잊고 있었던 살림의 작은 기술에 대해서 꼼꼼하게 알려준다. 설거지도 대충 하는 게 아니고 그릇을 오염 정도로 분류하고 밑처리해서, 빨래도, 청소도. 어떤 일이든,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신이 깃들어 있다. 옛날 사람들은 집을 갈고 닦으며 관리하며 집에 사는 신을 위해 한다고 생각했다. 소위 집안일을 하찮은 일로 보지 않고 집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을 지켜주는 신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나간 무속신앙을 고집할 이유는 없지만 그만큼 집과 생활을 귀하게 생각했던 그 정신을 되살려 집안일에 대한 깊이 있는 명상과 삶을 윤택하고 매순간 만족을 안기는 무념무상의 단순반복 살림의 세계에 귀의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이 책을 소개하면서 누구를 위한 책인지, 누가 읽어야 하는 책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살림 자체가 천시되는(사실 모든 육체노동이 천시되는) 한국에서는 이 책의 리뷰에 의외로 악평이 많다. 그래도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내용이 담긴 리뷰를 찾을 수 있었다. "아이가 이 책을 읽고는 살림에 대해 이것 저것 참견하면서 관심을 가지면서, 이 책에서 얻은 지혜를 써먹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을 보고는 웃음이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누구든 리뷰에 나오는 아이처럼 더 나은 생활을 하고자 하는 순수한 동기와 반짝이는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누구 한 명이라도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아주 작지만 행복한 이런 변화를 위해 이 책을 추천해본다.
- 21년 11월 27일 바람서적 수석 북큐레이터 작성